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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는 옛날에 CD를 판 적이 있었다.
약 100여 장 정도만 남기고 모두 팔았다.
그 기준은 추억이 깊게 남은 음반이었고, 제아무리 명반이어도 싹 팔았다.
그렇게 강하게 팔고 나니, 음반사는 흥미는 싹 사라졌고 음반은 거의 사지 않았다.
그런데 음반을 판 후 십 년 정도 지나, 다시 음반을 사 모았다.
팔 때는 또 음반을 모을 거란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다.
특히나 이미 한 시대가 꺾여 사장된 줄 알았던 LP로 말이다.
어쩌다 입문한 LP는 근 몇 년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 열심히 모았다.
처음엔 CD로 모았던 추억의 음반들을 중심으로 LP를 다시 모았다.
그러다 명반으로 취급받는 음반들을 모았다.
취향이 아니어도, 명반이라면 가격만 적당하면 지갑을 열었다.
덕분에 듣지 않는 판들이 잔뜩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 음반들을 평생 턴테이블에 올릴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구매한 음반들은 이미 스트리밍이나 CD로 대부분 들은 음반이다.
솔직히 안 듣고 산 음반들도 조금은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난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잡아 먹힌 사람이 됐단 결론이 섰다.
스스로 통제도 못 할 음반들은 제아무리 명반이어도, 내 세계에선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팔아야 할 음반을 일단 한 50여 장만 추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LP장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먼저 아델(Adele)의 음반이 [25]와 [30] 두 장이 눈에 띈다.
아델은 데뷔 시절 [19]음반 때부터도 좋아했었다.
수록곡 'Chasing Pavements'는 특히 많이 들은 좋아하는 곡이었다.
데뷔 앨범보다 완성도가 높은 [25], [30]에도 좋아하는 곡들이 있었기에 구매를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음반을 천천히 바라보고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들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답은 단순했다.
턴테이블에 올릴 정도로 좋아하는 음반이 아니다.
아델이라면 적당한 가격에 당근하면, 누군가 기쁜 마음으로 음반을 들을 것이다.
나는 가끔 우연히 들려오는 라디오에서의 아델 목소리면 기쁘게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더 듣고 싶으면 스트리밍으로 그래도 해소가 안 되면 다시 영입하면 그만이다.
나중에 프리미엄이 수십만 원이 붙었으면 어떨까? 그래도 그때 사면 그만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다시 사랑한 죄'의 벌금은 아깝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 외에도 많은 음반이 판매 후보에 들어섰다.
보내기 전에 가볍게 턴테이블에 올려 불량 상태를 확인하고 방출하려 한다.
나를 어지럽게 하는 음반들을 보내어, 남은 음반에게 더 많은 감정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리고 앞으로 들여오는 음반들은 내 마음의 애정을 묻고 또 물어 평가하여 들이자.
많은 물건에 잠식되어 마음을 혼탁하게 만들지 말자.
내가 통제할 만큼의 물건이 있을 때, 비로소 과잉이란 족쇄에서 마음이 자유로워진다.